'너는 무엇을 남길래?'

'너는 무엇을 남길래?'
Photo by Joel Holland / Unsplash

마음이 굉장히 뒤숭숭했다.
제자훈련을 하고, 소명클래스를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숙제하랴 예배드리랴 분주함이 가득한 탓인지
오히려 깊이 있는 기도가 잘 되지 않았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마음껏 예배하던 때와 달리,
‘해야 하는 것들’에 사로잡히는 순간
나는 자유할 수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런 시점에 오랜만에 한동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는데,
15년 넘게 다닌 회사를 박차고 나와
로고스호프를 타고 전 세계를 돌며
선교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가족 4명이 함께.

안정형이었던 선배가 이런 결정을
이 시점에 내렸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여정을 듣다 보니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심이 분명히 느껴졌다.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면,
너는 하늘 나라에 무엇을 남기고 있니?”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고
선배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부끄러움,
죽음을 생각하며 느낀 인생의 유한함,
후회 없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이 모두 합쳐져
그 방향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다솜아, 인생 짧다.
너도 얼른 기도해봐."


더 놀라웠던 건, 선배가 이 결심을
아내에게 전했을 때, 현실적인 아내가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Yes”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아내도 선교에 대한 마음이 있었고,
가족 모두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 후 선배는 다양한 선교사 자녀들을 만나며
하나라도 걸림돌이 있다면 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는데,
예상과 달리 반대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반대할 것 같았던 상사까지도
그의 결정을 응원해주었고,
주위 모두가 길을 막기보다 밀어주는 느낌이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걸림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준비들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영어 테스트, 성경 테스트 등 끝없는 시험들이 있었지만,
선배는 “어차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임했고,
통과하기 힘들어 보이던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2년 동안은 돈을 벌 수 없고,
한 사람당 최소 1000불,
2년 기준 1억이 넘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후원을 받기 위해
보통의 기도편지 대신 제미나이와 챗GPT를 활용해
웹툰과 영상을 만들고 계시다고 했는데,
그 모습도 참 귀하게 느껴졌다.

가기 전에 선배가 말했다.
“다솜도 글로벌 인재인데, 가정 없을 때 도전해봐.”
나는 이런 명확한 인도하심을
너무 경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큐티와 예배를 드리면서 봤던 제목,
“하나님은 보이는데 내 삶에 개입하지 않을 때.”
이 말이 지금 내 상태와 완전히 같았다.

지금의 환경에 저항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리와 섭리를 따르는 것.
내 판단과 지혜로만 해석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진짜 묻기를 원하셨다는 걸 깨달았다.

시편 57편 2절,
“I will cry to God Most High,
To God who accomplishes
all things for me.”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 속에서 드린 기도인데,
이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를 위한 주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

지금 내 상황이 요나의 물고기 배 속 같기도 하고,
사자 굴 같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이루신다는 그 고백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윗은 태토남이구나!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예배에서 들었던 말씀 중
이 말이 참 멋있었다.

“나의 자신감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 있는 용기다.”


모든 것을 잃고 나 자신을 잃는 순간이 와도
하나님 한 분 붙잡는 그 용기.
그게 자신감이라는 말이 너무 멋있었다.

여러 번의 예배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라.”

이 격변의 시대 속에서
때론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아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 땅에서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이 땅을 넘어서 무엇을 남기느냐
라는 것을 계속 붙들게 된다.

어제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
하나님이 나를 진하게 다시
만나고 싶어 하셨다는 게 느껴졌고,
인간이나 어느 누구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지니
오직 하나님만 가능하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면
분명히 응답하시고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매일 넘어지고 무너지는 나조차
이토록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매일 나의 의를 못 내려놓고
내 힘으로 하려는 나를 기다려주시는 분.
주님의 사랑이 크게 느껴졌다.

그분은 이미 모든 걸 이루셨고 완성하신 분.
나의 계획도 이미 완성형일텐데,
나는 그 과정 가운데 서 있는 것이겠지.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도 울부짖으면서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