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는 방법에 대해 몸소 알려주시려고

힘을 빼는 방법에 대해 몸소 알려주시려고
Photo by Semyon Borisov / Unsplash

때로 나는 하나님을 과소 평가했던 것 같다.
'하나님! 주시기로 하셨는데 왜 안주시나요?
도대체 언제인가요? 진짜 주시는 거 맞아요?
아 기약 없는 기다림은 힘들단 말이에요~'

의심과 불평 속에서
'크리스천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란 믿음을 갖는 일'
이 문장이 깊이 와 닿았다.

콩알만 한 믿음 가지고
나는 자꾸 스스로를 증명해내려 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로 증명되었는데 말이다.)
“주님, 저 주님 말씀대로 살고 있어요~”
이걸 자꾸 보여드리려고 했고,
아직도 내 힘이 온전히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에야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발을 낫게 하지 않으신 걸까…?)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 힘이 여전히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구하고 바라는 건 많으면서도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려버렸다.

나는 종종, 아니 자주 후회하곤 했다.
“주님, 그때 제가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더라면…”

설날 전날, 나는 할머니 댁에 가기 직전
엄마와 대화 중 엄마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
“엄마, 나한테 자꾸 이러면
할머니 댁은 어떻게 가라고요…”

동생의 수능으로 인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3년 넘게 못 뵌 상황.
게다가 둘째는 함께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친할머니는 서글서글하게 “우리 새끼 잘 왔다~”
이렇게 반겨주시는 분이 아니었고,
“왔냐?”, “먹어라, 왜 안 먹냐” 같은
경상도식의 툭툭 내벹는 말투,
항상 우리 엄마를 불편하게 하셨기에
늘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본가까지 왔으니 가야지 싶어
결국 고민하다가 차에 올랐고, 그 후 사고가 났다.

먼저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시는 말에 또 기분 좋아서
열심히 눈도 쓸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성기 이야기를 잔뜩 들었다.
(엄마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다음 날 친할머니 댁에 아주 잠깐 들렀다가
할머니와 함께 친척 집으로 이동하는 길,
하필 눈이 엄청 많이 왔다.
그렇게 나는 계단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

사실 그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 뼈가 부러진 것 같다.'
아예 발을 쓸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괜찮다, 아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퉁퉁 붓고 피 멍 든 발을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결국 다음 날 급히 본가로 돌아와
병원을 찾았고,
정말로 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필 그때가 찬양팀을 본격적으로
열심히 시작한 지 한 달쯤 된 시점이었고,
부서 이동도 막 하기 직전이라,
2025년을 향해 열정이 넘치던 시기였다.

나는 종종 하나님께 말했다.
“주님, 저 힘 빼는 법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혹시, 내가 했던 이 기도 때문일까?
왜 하필 ‘발’이었을까?

특히 발은 움직이지 말아야
빨리 붙는다는 걸 아는데,
한 달을 휴직하고 깁스를 한 뒤
두 달간 다시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뼈가 계속 안 붙고 통증은 더 심해졌다.

결국 회사에서도
오랜 기간 낫지 않는 걸 보고
2주간 재택근무를 허락해주었고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 속에서 나는
후회와 미련을 꽁꽁 싸맨 채
뾰로통하게 기도했다.

“주님, 저 이 일 시켜주신다고 해놓고
왜 다시 도로 뺏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일을 멈추신 게 아니었다.
내가 ‘힘을 빼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길 원하셨던 거였다.

현장에 나가지 못하게 된 나에게
회사에서는 보다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페이퍼 업무들을 맡겼고,
원래 하려던 일은 못 하게 되었다.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은 나를 다듬고 계셨다.

가끔 내게 주신 예언들을 보면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돋는다.
‘주님이 진짜 내 밭을 갈고 계시는구나.
내 바운더리를 넓히시려는 거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채롭고 소망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였다.
빨리 꿈을 이루고 싶었던 나에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좌절하고 고뇌하는 그 지하실의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누구는 지옥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님께 가자!

고난 주간 매일의 예배를 8시에 집에서 드리면서
주신 말씀을 글로 적어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지금도 내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내가 먼저 침묵할 때일 수 있겠구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
할 수 없는 것들,
내 능력의 한계가 드러날 때마다
내 존재 가치가 떨어진 것 같았지만,

바로 이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타이밍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기도 중 스크린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울며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실까, 생각이 들었고
내가 주님 앞에 손을 벌리고 힘을 빼는 그 모습,
그 모습을 주님은
오랫동안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주님,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해주세요. 제발요.